숭례문은 "도성의 남쪽 대문"이라는 뜻의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자주 불렸다. 정식 명칭이라기보다는 일반 명사로 시작하였으나,[11] 조선 시대에도 숭례문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불려온 명칭으로 보인다.[12] 특히 한문을 잘 모르는 서민의 경우 현판을 읽을 수 없으니 보다 직관적인 "남대문"이 지배적으로 쓰였으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의 언급 빈도로 볼 때 한문을 잘 알던 권력층에서도 "남대문"을 매우 자주 사용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13] 1996년까지는 "서울 남대문"을 공식 문화재 명칭으로 사용하면서 사실상 고유명사화되어 주변 지명도 전부 "남대문"을 사용하였고('남대문'시장 등), "숭례문"은 거의 잊혀질 정도였으나 이후 문화재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서울 숭례문"으로 개칭하였다.
일본과의 관련성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당시 기록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기 전에는 "남대문(南大門)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강제로 개명시킨 이름이다(혹은 비하적 명칭이다)"라는 설이 꽤 유명했는데, 특히 숭례문 방화 사건 이후 시민들의 숭례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 속설의 영향을 받아 의식적으로 남대문을 피하고 숭례문으로 부르는 사례가 많아지기도 했다. 이는 잘못 알려진 일본어 잔재설의 대표적 예로, 상기했듯 조선시대부터 남대문이라는 이름은 널리 쓰였다.
이는, 1934년 일제가 사적 지정을 하면서 보물 1호로 숭례문을 "남대문", 보물 2호로 흥인지문을 "동대문"이라는 정식 명칭이 아닌 통상 명칭으로 등록했다는 사실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남대문", "동대문"이 당대에 많이 쓰였기 때문에 명칭으로 쓴 것이지 다른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재 명칭으로 정식 명칭을 배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에도 1962년 일본의 문화재 목록을 답습하여 "서울 남대문", "서울 동대문"이라는 이름을 30년 이상 유지하면서 숭례문, 흥인문이라는 정식 명칭이 거의 잊혀지는 부작용을 유발하였다. 결국 1996년 "서울 숭례문", "서울 흥인지문"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일제의 지배와 그에 대한 반감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발생한 여러 속설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고 숭례문이라는 정식 이름이 다시 (조선시대보다도) 널리 알려지는 데에는 기여했다고 볼 수 있으나 아직까지 일부 영향력을 행사하여 거꾸로 "남대문"이 묻히거나 배제되는 부작용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도 "남대문"이 널리 사용되었음이 기록에 잘 나와있으므로, 정식 명칭을 존중하는 의미라면 몰라도 이러한 이유로 "숭례문"을 굳이 고수할 필요는 없다.